BCWW 2023 참석차 방한, 봉준호·박찬욱 이후 나도 한국 이름 찾아
"한국적인 것, 한국인의 경험과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세요."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크리에이터이자 총괄 책임자 겸 감독인 이성진씨가 한국의 콘텐츠 창작자에게 조언했다. 이 감독은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BCWW 2023’의 특별 세션에 연사로 참여했다. BCWW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아시아 최대 방송영상마켓이다.
한국적인 경험과 정체성으로 멋지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봅시다.
'삶의 진실에서 스토리를 건져 올리는 법'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세션에서 이 감독은 <성난 사람들>에 얽힌 뒷이야기, 미국의 아시아계 창작자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성난 사람들>은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가 도로 위에서 난폭 운전으로 엮이고 복수전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시아계 제작자와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이 작품은 지난 4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후 현대인의 분노와 허무를 독특하게 풀어냈다는 호평과 함께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11개 부문 13개 후보에 올랐다.
이 감독은 자신이 몇해 전 실제 겪은 ‘로드 레이지’에서 <성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 전 퇴근길에 신호가 바뀐 걸 보지 못한 저에게 흰색 BMW 차량을 모는 백인 남성이 고함을 지르고 경적을 울려댔다. 감정이 폭발한 제가 난폭 운전을 하며 따라간 일이 있었다”며 “이 경험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고 두 캐릭터에 대해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 한국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 만들기
이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주연 배우인 앨리 웡과 스티븐 연이 작업에 참여하면서 아시아계 여성과 남성이 서로 부딪치는 개성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 감독은 1981년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다. <성난 사람들> 속 한인 교회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가 경험한 교민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한국 이름 찾기와 정체성을 피력하는 방법"
이 감독은 2020년대 들어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처음 작가로 데뷔했을 때에는 아시아계 작가가 아주 소수였고,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까’ 걱정하면서 썼다”며 “지금은 다양성이 강조되면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뭘 좋아할까’보다 내 정체성을 피력하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체성을 피력하는 한국 이름 사용
작품의 엔딩 크레디트에 한국식 이름 그대로 ‘LEE SUNG JIN’을 올리는 것 역시 정체성을 피력하는 방식 중 하나다. 이 감독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워 ‘소니(Sonny)’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그러나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해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부를 땐 미국인들이 실수하지 않아요. 저도 소니란 이름 대신 한국 이름 이성진에 자부심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미국인들도 한국 이름을 듣고 웃지 않을 거라고요.”
Jimmy's Opinion
이 감독은 북미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있는 제 친구들은 일본이나 브라질의 콘텐츠는 안 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K팝을 듣는다”며 “사람들은 한국인의 경험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또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저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인인 우리가 우리들의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한류의 성공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성난 사람들>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 감독을 보